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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국밥배당까지 끊겼다 … 주가 80% 폭락한 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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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풀 편
월풀의 공장에서 연설하고 있는 트럼프
월풀의 공장에서 연설하고 있는 트럼프

오랜 세월 동안 미국 가정의 다용도실을 지키며 단단한 신뢰를 쌓아왔던 가전 공룡이 침몰하고 있습니다.

70년 동안 단 한 번도 거르지 않았던 주주 배당을 전격 중단하며 이번 주 시장에 충격을 줬습니다. 그 결과 주가는 최고점 대비 80% 이상 폭락했습니다.

한때 세계 시장을 호령하던 명가는 어쩌다 스스로 무너져 내리게 되었을까요.

한때 우주를 누비던 세계의 세탁소

오랜 시간 미국인들에게 월풀이라는 이름은 커다란 동경이자 자존심이었습니다. 월풀의 역사는 단순한 가전제품 제조를 넘어 미국 중산층의 라이프스타일 그 자체였습니다.

월풀이  1960년대에 개발한 ‘우주선용 주방 시스템 ’
월풀이 1960년대에 개발한 ‘우주선용 주방 시스템 ’

일상생활뿐 아니라 기술 개발에서도 세계를 선도했습니다.

월풀의 기술은 ‘NASA 우주 키친 독점 개발’로 상징됩니다. 1960년대 미·소 우주 경쟁이 한창이던 시절, NASA는 무중력 상태에서 우주비행사들이 사용할 주방 시스템을 월풀에 요청했습니다.

월풀은 세계 최초로 우주 공간에서 물을 공급하고 음식물을 데우는 폐기물 처리 일체형 주방을 완성했습니다. “달에 가는 우주비행사도 월풀의 기술을 쓴다”는 사실은 월풀을 미국 첨단 기술과 신뢰의 대명사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불과 2006년까지만 해도 백년 숙적이던 라이벌 기업 ‘메이태그(Maytag)’까지 전격 인수하며 미국 세탁기 시장 점유율 50%를 돌파했습니다.

미국 반독점 당국의 우려마저 넘어서며 ‘백색 가전의 공룡’, ‘세계의 세탁소’라는 별명을 얻었던 전성기였죠.

관세장벽에 고립된 건 정작 그들이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월풀의 왕국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대 들어 뛰어난 품질과 혁신적인 기능을 앞세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국 시장을 거세게 공략해 들어오면서부터입니다.

위기감을 느낀 월풀은 제품 기술력을 높여 정면 승부를 펼치는 대신, 강력한 ‘정치적 로비’와 ‘보호무역주의’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월풀의 2026년 최신 세탁기라인업. UV 살균 기능이 특징이다.
월풀의 2026년 최신 세탁기라인업. UV 살균 기능이 특징이다.

삼성과 LG를 상대로 특허 소송, 반덤핑 제소,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요청을 일삼으며 철퇴를 가했습니다.

급기야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오하이오의 월풀 공장을 직접 찾아가 “월풀 노동자들을 지키기 위해 한국산 가전에 강력한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연설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통상 압박은 월풀에게 최악의 부작용으로 돌아왔습니다. 관세 폭탄을 맞은 한국 기업들은 좌절하는 대신, 미국 현지에 대규모 스마트 공장을 짓고 현지화 체제를 전격 구축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국 가전업체들의 미국 현지 생산 기반과 관세 대응력만 한층 더 튼튼하게 키워준 꼴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우리 기업이 프리미엄 가전 시장을 공략하는 동안, 중국 가전업체들은 가성비 공세를 퍼부었죠.

대표적으로 2016년 중국 하이얼은 미국 가전의 또 다른 상징이었던 GE(제너럴 일렉트릭)의 가전 사업 부문을 54억 달러에 전격 인수했습니다. 하이얼은 ‘GE Appliance’라는 미국 친화적 브랜드를 등에 업고 월풀의 중저가 시장과 주택 건설용 B2B(기업간거래) 공급망을 대대적으로 침투했습니다.

처참한 성적에 월가도 외면

정치적 보호막 뒤에 안주했던 월풀의 재무 성적표는 참담함 그 자체입니다.

[김형규 디자이너]
[김형규 디자이너]

시장조사업체 오픈브랜드 조사에 따르면, 미국 가전시장(금액 기준) 점유율 1위는 LG전자(20.9%), 2위는 GE(20.1% · 하이얼 소유), 3위는 삼성전자(15.3%)가 차지했습니다. 부동의 1위였던 월풀은 12.6%로 4위까지 밀려났습니다.

2026년 2분기 매출은 35억 2000만 달러(약 5조 원)로 전년 동기 대비 6.8% 감소했으며, 조정 주당순손실(21센트)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습니다.

연초에 제시했던 연간 주당순이익(EPS) 전망치 약 7달러는 불과 몇 달 만에 2.50~3.00달러 선까지 반토막 이상 하향 조정되었습니다.

현금 유동성이 바닥을 드러내고 부채 상환 부담이 가중되자, 월풀은 주주 신뢰의 보루와 같았던 배당 지급을 전격 중단했습니다. 그 결과 2021년 전고점 대비 주가는 5년 새 80% 이상 폭락하며 주주들에게 커다란 실망을 안겼습니다.

월가도 실망스러운 표정이 역력합니다. 골드만삭스(Goldman Sachs)는 최근 월풀에 대한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Hold)’으로 하향 조정하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습니다. RBC캐피털 등 다른 기관들도 ‘매도’ 의견을 유지하며 목표주가를 시장 평균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월가의 컨센서스(평균) 목표주가는 41달러 선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는 주가가 2021년 고점 대비 80% 이상 폭락한 현재 상태에서도 추가 상승 여력이 거의 없거나, 오히려 더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물 안 거인의 몰락이 주는 교훈
[김형규 디자이너]
[김형규 디자이너]

월풀이 이토록 무기력하게 무너진 근본적 이유는 ‘과도한 북미 시장 의존도’에 있습니다.

2015년까지만 해도 월풀 전체 매출에서 미국과 해외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5 대 5로 균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국 가전업체들의 저가 공세로 아시아와 유럽 등 해외 시장에서 밀려나기 시작하자, 월풀은 해외 사업장을 잇따라 매각하고 철수하는 ‘안이한 선택’을 내렸습니다.

수익성이 비교적 높은 안방, 즉 북미 시장에만 몰두하는 배수진을 친 것입니다. 그 결과 지난해 월풀의 미국 매출 비중은 20년 만에 최고치인 65%까지 치솟았습니다.

세계화 야망을 포기하고 안방에 올인한 전략은 곧 독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가전제품 교체 수요는 주택 매매 거래와 직결됩니다. 미국 주택 시장이 고금리와 고물가의 파도를 맞아 극심한 침체에 빠지자, 집을 사고팔며 새 가전을 들여놓던 미국 소비자들 주머니가 꽉 닫혀버린 것입니다.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도 아쉬웠습니다. 경쟁사들이 AI 프리미엄 가전이나 B2B 시장으로 영역을 다변화하는 동안, 월풀은 전 세계 직원 수를 절반으로 줄이는 등 ‘비용 절감’에만 집착하다 혁신 타이밍을 완전히 놓쳐버렸습니다.

월풀의 몰락은 뼈아픈 교훈을 던져줍니다. 아무리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가졌더라도 혁신과 시장 다변화를 소홀히 한 채 안방 독점에 안주하면 지속가능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플러스 포인트>
▶ 보호무역 안주와 혁신 지체로 ‘미국 제조업 상징’ 월풀의 몰락
▶ 북미 주택시장 침체 직격탄으로 70년 만에 배당 중단 발표하고 주가 80% 폭락
▶ 골드만삭스, 최근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Hold)’으로 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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