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도로섬
필리핀의 섬
민도로섬(타갈로그어: Mindoro)은 필리핀을 구성하는 섬의 하나로, 필리핀에서 일곱 번째로 크다. 루손섬의 서남부에 위치하고 있다. 민도로 남부 해안은 술루해 북동쪽의 극단을 형성하고 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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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 |
| 지리 | |
|---|---|
| 위치 | 동남아시아 |
| 좌표 | 북위 12° 55′ 49″ 동경 121° 05′ 41″ / 북위 12.93028° 동경 121.09472° |
| 군도 | 필리핀 제도 |
| 면적 | 10,571.8 km2[1] |
| 최고 고도 | 2,586 |
| 최고점 | 할콘산 |
| 행정 | |
필리핀 | |
| 주 | 동민도로주 서민도로주 |
| 인구 통계 | |
| 인구 | 1,238,573 (2010년) |
| 인구 밀도 | 117.2/km2 (303.5/sq mi) |
| 민족 | 망얀족, 타갈로그족 |
지리
편집역사
편집고대의 중국 상인은 이곳을 ‘마이’(摩逸)라고 불렀다. 스페인 사람들은 이곳을 ‘금광’을 뜻하는 미나 데 오로(Mina de Oro)라고 불렀으며, 이것이 현재의 이름이 되었다. 작고한 사학자 윌리엄 헨리 스콧에 따르면, 송나라의 공식 역사 기록에 972년에 마이를 중국의 교역 상대라고 언급하고 있다. 마이를 언급한 다른 사초에도 민도로가 등장하고 있다.[3]
태평양 전쟁 중에 일본군이 이곳을 점령했지만, 1944년 12월 15일에 미군은 루손섬을 탈환하기 위한 발판으로 민도로 섬에 상륙을 감행하여 민도로섬 전투가 벌어졌다. 해군은 상륙한 미군을 저지하기 위해 레이호 작전을 실시하였고, 망가린만에 7척의 돌격부대를 투입하여 미군에 피해를 주고 빠졌다. 이것은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 최후의 승리가 되었지만 전황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결국 민도로섬의 일본군은 산 속으로 패주하여 기아와 전염병에 시달렸고, 현지 게릴라와의 전투로 대부분이 사망했다. 오오카 쇼헤이는 민도로섬에서 포로가 되어 이후에 이 섬을 무대로 한 수많은 전기 소설을 썼다. 1956년 일본의 항복을 알지 못한 채 민도로섬 산 속에서 숨어지내던 4명의 잔류 일본군이 귀국했다.
행정 구역
편집경제
편집주민
편집교통
편집각주
편집- ↑ “Islands of Philippines”. 《Island Directory》. 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me. 2019년 4월 2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5년 5월 22일에 확인함.
- ↑ C.Michael Hogan. 2011. Sulu Sea
- ↑ Scott, William Henry. (1984). 〈Societies in Prehispanic Philippines〉. 《Prehispanic Source Materials for the Study of Philippine History》. Quezon City: New Day Publishers. 70쪽. ISBN 971-10-0226-4.
외부 링크
편집- "민도로 지도" showing towns and major mountain tops
- Mindorenyos - Connecting Mindoro People
- Online Community for Mindorenyos
